[일을 위한 디자인] AI 시대에서 리서처는..
응답
2026. 1. 16.
안녕하세요, 유저스푼의 리서처 지수입니다.
저는 디비디랩을 2019년에 시작하며 늘 “UX 리서치 솔루션”이라고 우리를 소개해왔습니다.
UX 리서치를 쉽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설문 설계, 응답자 모집, 불성실 응답 정제, 분석 등 리서치 운영 과정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겠다는 목표였죠. 하지만 그때 투자자와 고객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예상 밖으로 단순했습니다.
“UX가 뭐죠? UT가 뭐죠?” 그리고 모든 설명을 마친 뒤 돌아오는 마지막 질문은 늘 같았습니다.
“그래서 디비디랩은 결국 뭐 하는 회사인가요?”
UX는 당시에 화면을 예쁘게 그려내는(!)일로 오해를 받았고, UX를 설계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었습니다. UX와 디자인에 대한 오해를 반복해서 들으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고객을 계몽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공부하고 이해해야하는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필요한 상품을 팔아야겠다."고요.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의 유저스푼을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위한 디자인〉의 도입부에서 저자 역시 “디자이너란 어떤 직무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겪어온 오해와 질문을 다룹니다. 그 장면은 제가 초기 창업 시기에 겪었던 대화와 매우 닮아 있었고, 그 공감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 첫 이유였습니다.
최근 GPT 기반 생성형 AI 도구들이 대중화되면서, "이제 리서처는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더 자주 받습니다. 설문도, 응답자 모집도, 결과 분석도 AI가 할 수 있다면 리서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정량조사, 자동화된 리서치 운영은 결국 ‘도구’입니다. 도구의 사용법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어떤 방식으로 해석할지를 결정하는 힘이야말로 앞으로의 리서처가 가져야 할 핵심 자산입니다.
《일을 위한 디자인》은 바로 이 부분을 가장 본질적으로 짚고 넘어가는 책입니다.
“디자인은 직업이 아니라 사유의 훈련이고, 디자이너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더 성장하는 직업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힘입니다.” (p.17)
AI 시대에 UX 리서처가 갖춰야 할 태도, 문제 정의 능력, 사고의 구조화 능력을 디자인 사고라는 언어를 통해 풀어냅니다. 그리고 이 언어는 리서처, 디자이너뿐 아니라 모든 직업인에게 적용 가능한 통합적 프레임이기도 합니다. 이 글의 제목을 "AI 시대에서 리서처는.."이라고 적었지만, 사실상 일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리서처"라고 한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의 말 처럼, ‘생각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저는 가끔 엑셀과 관련된 유머글을 떠올립니다.

엑셀을 잘 다루는 부하직원에게 상사가 "엑셀 팡션"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문자입니다.
생성형 AI가 업무 수행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사용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마치 엑셀을 사용하는 부하 직원처럼.. 우리는 이 신문물을 "도입하느냐, 마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책에서 "학습"의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저자가 만든 프레임워크는 입시 이후로 공부와 손 놓는 경우가 많은(ㅎㅎ) 대한민국의 많은 전문가들이 실무에서 바로 도입할 수 있는 가볍고 실용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생성형 AI가 가져온 가장 큰 착시는, 우리 모두가 모든 걸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할 점은 AI는 도구일 뿐, 문제를 정의하고 해석하고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디비디랩이 ‘AI 페르소나’라는 기능을 통해 리서치 결과를 요약하고 해석하는 AI 기능을 준비하면서도, 해석과 판단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디자인, 리서치, 기획이라는 분야에 오래 몸담다 보면, 업무의 절반은 모호함과 싸우는 일이 됩니다. 빠르게 인사이트를 내야 하는 압박 속에서,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좋은 디자인”을 정의하기 전에, “좋은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규정해야 한다는 태도 말입니다. UX 리서치도 똑같습니다. 좋은 인사이트는 갑자기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의사결정해야 하는지, 그 의사결정이 어떤 일의 맥락에서 발생하는지, 이해관계자가 어떤 시간과 비용 제약 속에 있는지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리서치는 데이터 수집이 아니라 업무 생산성을 올리는 도구가 됩니다.
리서처로서 툴을 얼마나 빨리 배울 수 있는가보다, 어떤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느냐, 해석할 수 있는 관점이 얼마나 깊은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AI의 발전은 오히려 ‘얕은 전문가’를 드러내는 거울이 됩니다. 반대로, 탄탄한 사고 구조를 갖춘 사람은 AI를 통해 훨씬 더 깊고 넓은 문제 해결자가 될 수 있죠.
요즘 AI는 리서치 현장에서도 “더 빨리 요약해주는 도구”, “더 그럴듯한 인사이트를 만들어주는 기술”로 자주 소비됩니다. 하지만 AI가 진짜로 바꾸는 것은 결과물의 속도가 아니라, 업무의 구조입니다. 리서치에서 AI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리서치를 조직이 더 자주, 더 가볍게 실행하고 축적하게 만드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디자이너이든 리서처이든, 우리는 더 이상 ‘정답을 아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답을 찾아내는 사고 회로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 점은 AI와 함께 일하는 지금 시대의 본질적인 전환을 짚고 있습니다.
일을 위한 디자인, 디자인을 "설계"라는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디자이너가 아닌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AI 시대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사람, 변화하는 기술 속에서도 배움과 책임의 태도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구체적인 액션 아이템을 수립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는 책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나는 언제든 다시 배울 수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고객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반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잡아야 할 건 ‘이미 가진 지식’이 아니라, ‘기꺼이 배우려는 마음’이다.” (p.116)
1편에서는 여기까지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 2편에서는 이 책의 후반부 — 팀워크, 태도, 일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